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동시대의 거장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부산에서 만났다.
하마구치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거장의 신작이나 세계적인 화제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두 편의 작품이 한꺼번에 초청받아 부산을 찾았다.

평소 하마구치 감독이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 봉 감독과의 특별 대담은 이번 영화제 최고의 화제를 모은 이벤트가 됐다.
7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옴니버스 영화 ‘우연과 상상’이 차례로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뒤 무대에 함께 오른 두 감독은 서로의 작품과 작업에 대한 궁금증과 애정을 풀어내고 공통분모를 확인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봉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궁금한 것도 많고, 동료 감독으로서 직업적 비밀을 캐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미친 듯이 계속 질문을 하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대화를 이끌어 갔다.
첫 번째 질문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주를 이루는 자동차 안 대화 장면이었다.
봉 감독은 ‘기생충’에서 박 사장과 기택의 자동차 대화 장면을 멈춰 있는 차에서 찍으며 배경은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했지만, 하마구치 감독은 “평범하게 주행하는 과정에서 찍었다”며 “그러지 않으면 바라는 대로 찍히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문답은 대화의 중요성으로 이어졌다. 봉 감독이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에 애정 내지는 집착이 느껴진다”며 그 의미에 관해 묻자 하마구치 감독의 긴 답변이 이어졌다.
“대본을 쓸 때 대사를 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타입입니다. 저의 특징이자 약점이죠. 대사를 쓸 때 움직임이 없으면 영화에서 재미가 없다고 학생 때부터 생각했어요. 대화할 때 찻집에 앉아서 하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차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으로 시작했지만, 차 안에서의 대화를 선택하고 진행하다 보니, 차 안에서밖에 할 수 없는 대화가 있더라고요. 저는 평소에 운전하지 않아서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운전하는 사람이 졸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거는 게 배려죠. 처음에는 배려한다고 시작한 대화가 나중에는 핵심에 가닿는 경험을 실생활에서 하게 되고요. 차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시간은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말랑말랑한 시간이 되고, 곧 끝이 날 시간 사이에 말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기도 하죠.”
봉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의 스승이기도 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두고 “아시아에서 구로사와 감독의 팬클럽을 만든다면 우리 둘이 사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만나고 싶은 범인을 못 만나니 상상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만날 수 없었던 연쇄 살인범을 구로사와 감독의 ‘큐어’ 속 살인마 캐릭터를 보면서 ‘저런 인물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봉)
“‘살인의 추억’은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큐어’는 20세기 일본 영화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 두 작품의 접점을 말해주시니 흥분될 정도로 기쁩니다.”(하마구치)
‘우연과 상상’ 속에서 갑작스러운 줌 인 장면과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끝없는 대사들을 두고는 홍상수 감독과 에릭 로메르 감독이 소환됐다.



하마구치 감독은 “구로사와 감독이 흉내 낼 수 없는 실제 스승이라면 로메르 감독은 흉내 내고 싶은 가공의 스승 같은 느낌”이라고 답했다.



“대사를 쓰는 것으로밖에 영화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로메르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재밌게 대사를 많이 쓸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로메르가 쓰는 대사는 설명하기 위한 게 아니라 말하는 인물이 드러나는 대사, 연기하는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게 하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그런 작업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두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대화는 이후로도 예정된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겨 이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