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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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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포커스오피니언 국치일(國恥日)- 나라가 수치를 입은 날

[박영남 칼럼] 국치일(國恥日)- 나라가 수치를 입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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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달라스 한인상공회 수석고문

역사(歷史)는 앞길을 밝혀주는 불빛이다. 지금으로부터 112년전, 1910년 8월 29일은 일제(日帝)가 우리 땅을 강탈(强奪)하고, 세계 지도(地圖)에서 우리나라를 완전히 지우며, 우리를 일본(日本)의 노예(奴隸)로, 반만년(半萬年) 우리 역사(歷史)에 마침표를 찍은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법적으로 효력을 얻는 날로 우리는 이날을 경술 국치(庚戌國恥)라 부른다. 합방조약(條約)은 이보다 1주전인 8월 22일에 체결(締結)되었다.

우리는 나라의 부끄러움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이다. 또한 국치일을 절대 기억(記憶)에서 지우지 말자. 다시는 이런 수치(羞恥)가 생기지 않도록 경계(警戒)하며 다짐하자. 경술오적(庚戌 五賊)은 이완용(학부), 이근택(군부), 이지용(내부), 박재순(외부), 권눙현(상공) 이다.

한반도(韓半島)는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주변 강대국(周 邊 强大國)인 中國, 日本, 러시아의 국익(國益)이 첨예(尖銳)하게 부딪히는 요충지(要衝地)이며, 그중 가장 침략적 야욕(野慾)을 가진 나라는 단연(斷然) 일본이다. 일본은 지질적 특성상(地質的 特性上) 태평양(太平洋) 불의 고리(Ring of Fire) 위에 앉은, 온천(溫泉)의 나라로, 대륙진출(大陸進出)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가장
위험천만한 이웃이다. 일본은 우리 2배 가까운 면적(面積)과 우리 인구의2배가 넘는 크기의 나라다.

오래전부터 일본주민(住民)들은 수시(隨時)로 동해안(東海岸)에서 생계형(生計形) 노략(擄掠)질을 일 삼아 오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을 일으키니 이는 완전히 다른 전쟁(戰爭)이였다. 일본은 자신들의 넘쳐나는 서양식 화력(火力)을 국외(國外)로 방출(放出)하기 위해 조선은 물론 중국대륙(中國大陸) 침탈(侵奪)을 획책(劃策)하며 가도입명(假道入明) 즉 명을 치기 위해 조선에게 길을 빌린다는 명목(名目)으로 시작한 전쟁이다. 때는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가 건국(建國, 1392)하고 200년이 되던 해였다.

돌이켜 보면 일본의 건국(建國)과 문명(文明)은 과거 삼국시대(三國時代) 일본 열도(列島)로 이주(移住)한 한반도(韓半島) 유민(流民)들이 주축(主軸)이 되어 원주민(原住民)을 계몽(啓蒙)하며 세운 나라다. 임진왜란의 전후 수습(戰後收拾)도 안된 때에 중국은 여진족(女眞族)의 청(淸)나라로 정권(政權)이 바뀌면서, 조선이 명(明)과 가까웠다며 청(淸)이 일으킨 병자호란(丙子胡亂1636~1637의 3달)으로 조정(朝廷)은 삼전도(三田渡) 굴욕(屈辱)과 수10만 백성을 납치(拉致)하는 곤욕(困辱)을 남겼다.

병자호란 패전(敗戰) 이후로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干涉)을 받기 시작했고, 중국에 조공(朝貢,1401~1882)을 바쳤고, 중국의 보호국(保護國, 1882~1894)이 되였다. 이조(李朝, 139~1897)는 중국에서 유학(儒學)을 전수(傳受) 받아 500년 사직(社稷)을 이어갔다. 조정은 전봉준(全奉準)의 동학란(東學亂, 1894) 진압을 위해 청나라 군대의 한반도 주둔(駐屯)을 용납(容納)하자. 일본도 임의(任意)로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면서 청일전쟁(淸日戰爭, 1894년 7월~1895년4월))이 발발(勃發)했고, 이 전쟁은 일본의 승리(勝利)로 막을 내렸다.

이어서 터진 러일전쟁(露日戰爭, 1904년 2월~1905년 9월)은 부동항(不凍港)이 절실(切實)했던 러시아의 남하 세력과 한반도 지배권(支配權) 확보(確保)하며 대륙진출의 고삐를 당기던 일본의 충돌(衝突)로 이 또한 일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당시 서방열강(西方列强)들은 우월(優越)한 무력으로 영토확장(領土擴張)에 열중(熱中)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 격인 조정(朝廷)은 당쟁(黨爭)에 여념(餘念)이 없어 열강(列强)의 틈에서 갈 길을 잃었다.

극동(極東) 러시아와 만주(滿洲)에서 국권회복(國權恢復)을 위해 일제와 싸운 독립군(獨立軍)은 “나라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는 신념(信念)으로 일제(日帝)와 맞서 결사항전(決死抗戰)했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였다.

일본은 한일합방(1910년)에 앞서, 1차로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保護國, 1904년2월23일)으로 삼았고, 2차로는 외교권(外交權)을 박탈(剝奪)하는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 11월 17일)을 체결(締 結)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절대적으로 일본의 전략(戰略)을 경계(警戒)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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